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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남수단 내전'

by HOLD FAST 202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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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내의 지역, 종족, 종교 간 갈등으로 오랜 기간 내전을 거친 결과 2011년 남수단이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독립국가가 되었다.  수단은 넓은 영토와 풍부한 석유 매장량으로 인해 줄곧 열강들의 침탈의 대상이 되었었다. 18세기부터 영국과 이집트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나 1956년 수단공화국(Republic of the Sudan)으로 독립하였다. 
 
남수단 내전에 대해 알아보기 앞서 남북수단의 내전과 남수단 내전은 별개의 사건임을 먼저 이야기 해둔다. 남북 수단의 내전은 남수단의 독립과 관련된 내전이며, 남수단 내전은 남수단 내 군부의 파벌 간 권력투쟁을 지칭한다. 

수단공화국남부의 석유지대를 둘러싼 이권과 남북부 간 인종, 종교 차이 등의 문제로 갈등이 심했다. 수단 남부는 토착신앙과 기독교를 믿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주 구성원이었고, 수단 북부는 중앙정부의 직접 통치 하에 이슬람을 믿는 아랍계 민족으로 구성되어 남북 간 이질감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어 결국 무력 충돌의 양상으로 이어져 1955년 1차 수단 내전이 발생한다. 17년간 이어진 1차 내전으로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972년 수단 남부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아디스아바바 평화협정'으로 분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가 정부의 엄격한 이슬람화 정책에 대한 대항으로 '수단 인민해방군(Sudan People’s Liberation Army, SPLM/A)'을 위시한 반정부 조직이 대 정부 투쟁을 개시했다. 1983년부터 2005년까지 22년간 이어진 2차 수단 내전은 약 200만명의 사망자와 400만명의 난민을 남겼다. 2005년 유엔과 국제사회의 중재로 수단 남부와 북부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며 남수단은 자치정부를 수립한데 이어 2011년 국민투표를 거쳐 동년 7월 9일 마침내 '남수단 공화국(Republic of South Sudan)'이 수단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게 된다.

남수단 공화국은 독립 이후에도 석유문제로 수단과 갈등을 지속한다. 수단 전체 석유 매장량의 75%가 남수단 지역에 있었고 대부분의 정유 시설은 북부에 있었다. 양국 모두 석유매장량이 풍부한 '아브예이'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을 이어가다 2012년 9월 수단과 남수단은 석유수출 재개 및 비무장지대 설치를 골자로 하는 평화 협상에 합의 하였다.

남수단 내전을 이끌고 있는 살바 키르 대통령(왼쪽)과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 AFP=뉴스1

남수단의 대통령 살바 키르(Salva Kiir)와 부통령인 리엑 마차르(Riek Machar)는 수단 독립을 주도한 수단인민해방군(Sudan People's Liberation Army, SPLA)을 이끈 인물들로 이들 둘 간의 권력투쟁이 남수단 내전의 발단이 되었다. 

키르 대통령은 남수단 최대 부족이며 남수단 인구의 15%를 구성하고 있는 딩카족이고, 마차르 부통령은 역시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두번째로 큰 부족인 누에르족이다. 2인자인 마차르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자 키르는 2013년 7월 마차르 부통령을 포함한 내각을 해임시키기에 이르고, 그해 12월 수도 주바에서 개최된 SPLM 민족해방위원회(National Liberation Council) 회의에서 살바 키르 대통령의 추종 세력과 마차르 부통령 추종세력 간 무력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계기로 양대 세력의 폭력 양상이 남수단 전역으로 확산되며 내전의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권력투쟁에서 비롯한 분쟁이 종족 간 갈등으로 비화되어 국민들 간의 유혈사태로 확대되고 종족 , 종교 간의 갈등은 증오와 폭력으로 확대재생산 된 것이다. 내전이 인종 간 대학살의 형태로 지속되자 아프리카 정부 간 개발기구(Intergovernment Authority on Development, IGAD)의 중재로 2014년 1월 23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휴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양측의 무력충돌은 지속되었고, 2015년, 2016년에도 국제사회(미, 중, 아프리카연합)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잇다라 맺었지만 번번히 이행되지 않았다. 2018년 9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바바에서 키르와 마차르 간 '권력 공유를 통한 과도 정부 수립 및 민생 향상을 위한 석유생산 재개 등'을 골자로 하는 평화협정 이후 남수단의 분쟁은 일단락 되는 듯 하였으나 오랜 내전의 후휴증으로 인구의 60%가 넘는 약 700만명이 심각한 기근의 위기에 처해졌다. 2019년 들어 콩고민주공화국으로부터 에볼라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궁핍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남수단 유니티주에서 유니세프 이동식 보건소를 찾은 여성과 어린이들 -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한편, 평화협정 체결 이후 키르 대통령의 추종세력인 수단인민해방운동(SPLM-A)과 남수단 주요 야당 및 반군세력인 남수단반군단체(SPLM-IO) 간 충돌은 잦아들었으나 수단인민해방운동과 대립하고 있는  또 다른 주축 반군조직인 '민족해방전선(National Salvation Front, NAS) 및 6개 반군들은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아 여전히 무력분쟁의 양상이 잔존한다. 또한, 정부군과 반군 간 무력 분쟁 외에도 친정부 세력인 정부군과 주지사, 시의장 등에 의한 민간인 폭력과 인권 유린, 살인, 강간, 절도 등이 횡행하여 수단 국민들을 고통의 수렁으로 빠뜨렸다.  

남수단 내전으로 인한 국내실향민 및 이웃국가 피난민 수

유엔 안보리는 수단과 남수단 문제를 정례적으로 협의하고 주요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등 국제사회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남수단평화임무단의 일원으로 한빛부대를 파견하여 남수단의 평화 재건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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