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HOLD FAST
News

한눈에 보는 '수단 내전'

by HOLD FAST 2023. 4. 24.
728x90
반응형

수단의 정부군(SAF)과 반군(RSF, 신속지원군)의 내전 격화로 사상자가 늘고 있다. 동아프리카 지역의 무역기구인 '정부간 개발기구(IGAD)'를 위시하여 케냐, 남수단, 우간다, 지부티,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이 정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수단의 수도 하트룸과 내전 피해 지역 도시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구호 또한 시급하다. 또한, 현재 수단에 체류 중인 우리 교민 25명에 대한 안전 확보가 절실하다.

사진 : 연합뉴스 제공

오랜 피의 내전 끝에 2011년 분리 독립한 남수단과는 별개로 수단은 1956년 독립 이래 군벌의 독재와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려면 수단의 정부군과 반군 간 피의 전장이 되었던 다르푸르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랜 가뭄과 사막화의 심화, 인구 증가로 인해 사하라 사막의 목초지가 줄어들자 소위 '잔자위드'(devil on horseback:말 등에 탄 악마를 의미하며 리지가트의 아랍 바가리족으로 구성됨)로 불리는 아랍계 무슬림 유목민들이 남하하면서 아프리카계 농경민들(푸르, 자가와, 마살라이트 종족으로 수단 해방군과 정의평등운동의 주요 세력을 구성함)과의 충돌이 일어난다. 2004년 세계 10대 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던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은 잔자위드를 지원한 수단 정부의 방조와 묵인 하에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수단 정부와 잔자위드의 비 바가라족 주민에 대한 공격으로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수단은 면적이 19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큰 나라다. 다르푸르만 해도 면적이 50만km²로 한국의 5배에 이른다. 2003년 2월 다르푸르 지역에 대한 수단 정부의 '아랍화 정책'으로 인한 차별에 대항하는 비 아랍계 아프리카 민족들이 '수단해방군(Sudan Liberation Army: SLA)'과 정의평등운동(Justice and Equality Movement: JEM) 등  무장단체를 결성하여 전투에 들어간 사건이 바로 다르푸르 분쟁이다. 

알제리와 콩고민주공화국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세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수단은 홍해를 사이에 두고 아라비아반도와 마주 보고 있다. 인구 4800만명 중 70%는 아랍계이고 나머지는 베자족, 누바족, 푸르족 등의 아프리카계다. 기원전 2500~1500년 케르마 왕국이 있었으나 이집트 신왕조에 복속됐다가 기원전 8세기 쿠시 왕국이 세워져 1000년을 갔다. 기원후 4세기에 쿠시가 무너진 뒤 ‘누비아인’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여러 왕국을 세웠다. 하지만 14~15세기 이후 아랍계 유목민들이 들어오면서 이슬람화됐다.
19세기에는 이집트와 오스만제국이 수단을 점령하고 노예 공급처로 삼았다. 그 후 수십년은 이집트와 영국이 수단을 공동통치했다. 1952년 왕정을 무너뜨리고 영국군을 축출한 이집트 새 정권은 수단을 놓아주기로 결정했고, 마침내 1956년 수단은 독립국으로 재탄생했다.
이후의 역사는 쿠데타와 군부 독재로 점철되었다. 1969년부터 16년간 집권한 자파르 누메이리는 사회주의자이자 범아랍주의자로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를 추종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가까웠으며, 한동안 마오쩌둥주의를 추구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이슬람주의로 돌아섰다. 무슬림이 다수인 북부와 기독교도 및 아프리카계 주민이 많던 남부 사이의 갈등이 심해졌다. 내전이 일어났고 훗날 남수단이 갈라져 나간 원인이 됐다.

▲ 수단의 독재자 알바시르. NEWS1.

1989년 집권한 알바시르는 비무슬림 주민들을 탄압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을 구금하고 고문하고 학살했다. 그의 집권기에 30만~40만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사정은 당연히 나쁘다.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GDP)이 4000달러(약 530만원)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빈국이며 2021년엔 물가상승률이 380%를 기록했다. 성인 인구 40%는 글을 못 읽는다.
- 출처 : 한계레 신문, 구정은 국제 저널리스트.


1955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수단은 이슬람 지도자 알투라비에 의해 '반외세 반이교도'탄압이 자행되었고, 또 다른 독재자 알바시르는 수단의 석유자원이 70%이상 매장된 남수단 지역의 분리독립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잔자위드'를 지원하였으며, 오사마 빈라덴의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결성을 돕기도 하였다. 아랍계 유목민족으로 구성된 무장집단인 '잔자위드'에 의해 학살과 납치, 노예매매가 횡행하였으며 질병과 폭력으로 45만명이 사망하였고, 3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압델 파타흐 알 부르한(왼쪽) 수단 정부군 장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신속지원군(RSF) 사령관. AFP연합뉴스

2019년 독재자 알바시르의 수하 장성 압델 파타흐 알 부르한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알바시르의 30년 독재에 항거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부루한은 과거 다르푸르 분쟁 당시 정규군 군사령관을 지냈으며 독립국이 된 남수단과의 전쟁에서도 수단군을 지휘했던 이력이 있으며 2018년 육군 참모총장이 된 인물이다. 
독재자 알바시르를 등에 업고 출세했던 쿠테타의 주요 세력 중 한명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는 쿠테타에 가담하여 부르한 장군과 함께 '하트룸 학살'의 주역이 된다. 다갈로의 군대가 알바시르의 독재에 항거하던 하트룸의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던 것이다. 부루한은 자신을 통치자로 만들어 준 다갈로 군대의 세력이 커진 데에 부담을 느끼고 군 편제를 바꿔 다갈로의 '신속지원군'을 해산하려 하였으나 이에 반발한 다갈로가 다시 반란을 일으킨다. 2023년 4월 수단의 '두 군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수단은 30억 배럴로 추정되는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중국이 수단에 거액을 투자했고 자원의 이득을 독식한 정권은  걸프 산유국에 붙어 서방에 맞서는 시늉을 하며 권력을 이어갔다. 다갈로의 '신속지원군(RSF)'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예멘 침공 시 파병하였으며, 리비아 내전 때도 아랍에미리트를 도와 병력지원을 하는 등 걸프국들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며 막대한 후원을 받았다. 사우디는 홍해 개발에 나섰고, 아랍에미리트는 수단에 대규모 농업 투자를 하였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가 미, 영국과 4자 회담을 만들어 수단 사태를 중재하려는 배경이 자국의 경제적 안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집트는 부르한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수단에 해군기지를 지으려는 러시아는 다갈로와 관계가 깊다. 이집트와 미국은 홍해에 러시아의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 미국은 다르푸르와 남수단의 기독교 난민을 수용하며 반이슬람 전선에 활용하고 있으나 수단 지역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미비하다.     

수단 내전을 다룬 영화 '뷰티플 라이'

한편, 수단의 남쪽에는 신생국가인 '남수단'이 있다. 남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길고 참혹했던 내전을 치른 후 2011년 북부 수단으로부터 공식 분리 독립을 이루었으나 국경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이다. 최근 대통령의 소변 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회자되었던 그 나라이다.  이번 수단 사태와 별개로 남수단의 내전과 독립에 대해선 다른 포스팅을 통해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 한눈에 보는 '남수단 내전'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