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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吳潤), 삶과 작품들

by HOLD FAST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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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평산책방 페이스북

얼마전 평산책방을 연 문재인 전대통령의 인터뷰 중 문전대통령의 뒤로 벽에 걸려있던 오윤의 '무호도' 액자를 보다가 미술 전공자들도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이 낳은 천재 목판화가 '오윤'에 대해 포스팅 해보기로 한다.

오윤(吳潤)은 1946년 부산 동래에서 <갯마을>의 작가인 소설가 오영수(吳永壽)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7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민화, 무속화, 불화, 탈춤, 굿 등 한국의 전통과 민중문화를 연구하고 이를 예술로 형상화 하는데 노력하였다. 1969년부터 오경화, 임세택 등과 함께 '현실' 동인을 결성하여 리얼리즘 미술운동을 제창하고 시인 김지하 등과 함께 '현실동인 제1선언문'을 팔표하기도 하였다. 

김지하 시집 &lt;황토&gt;
박노해 시집 &lt;노동의 새벽&gt;


1970년 대학 졸업 후 입대하였으나 1972년 의가사 제대하였다.  전역 후, 경주의 전돌 공장에서 일하며 신라시대부터 전승되어온 전통 흙을 다루는 기술을 공부하였다. 1977년 박명자와 결혼하고 선화예술고등학교 미술과 교사가 되었다. 1979년 5월에 부친 오영수가 작고하고, 그해 11월 19일 젊은 작가들이 모인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으로 동인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다. 김지하의 시집 <오적(五賊)>과 이원수의 전래 동화집 <땅속나라 도둑귀신>의 판화를 비롯하여 <한국의 민중극>, <독립운동사연구>, <박노해 시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등 정치적 민주화 운동 및 투쟁을 지원한 포스터와 대형 걸개그림 제작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현실과 발언' 동인전에 참여하면서 서대문 미술학원을 설립하여 조소를 지도하기도 하였으며 목판화에 전념하여 창작 춤판 <강쟁이 다리쟁이>, <도라지꽃> 등의 포스터와 <민족의 노래, 통일의 노래> 출판기념회장 걸개그림을 제작하였고, 현실과 발언 창립전(1980), 새로운 구상화가 11인전(1981), 시대정신전(1984∼1985), 삶의 미술전(1984), 40대 22인전(1986) 등의 전시회를 통해 한국 민중판화·민중예술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86년에는 첫 판화전인 '오윤 판화전'을 민족미술협의회에서 개최하였고, 부산에서 판화전을 이어가던 중 지병인 간경화로 타계하였다. 

현대 판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천재 오윤(吳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미술로 승화시키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일깨워주었다. 해학과 민중의 신명, 그리고 한의 정서가 날카로운 칼맛을 통한 표현적인 선을 통해 형식과 내용의 탁월한 통일을 보여준다. 한국 민화나 풍속화 같은 전통 미술의 형식을 빌러 강렬한 선과 형태로 민중의 삶과 애환, 분노를 표현을 표했던 오윤의 목판화는 민중 판화의 전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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