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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傳燈寺), 강화도 추천 여행지

by HOLD FAST 2023.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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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사적)내에 위치한 '전등사(傳燈寺)'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자 강화에서 제일 큰 절이다. 주말 강화 나들이 첫번째 코스로 전등사를 찾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라고 했으나 1282년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불렀다고 한다. 1605, 1614년에 일어난 화재로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 4월부터 재건하기 시작해 1621년 2월 완성되었다. 1707년 사각을 고쳐 짓고 별관인 취향당을 지었으며, 그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78호)·약사전(보물 제179호)·명부전·삼성각·향로각·적묵당·범종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다. 

전등사

♦️ 대표번호: 032-937-0125
♦️ 템플스테이 사무국: 032-937-0152
♦️ 팩스: 032-232-5450
♦️ 문의 메일: jeondeungtemple@gmail.com

◻️자가용 이용 시

♣️ 올림픽대로
방화대교 지나 강화방향 1,2차선 직진 ⇒ 강화 이정표 보고 계속 직진 ⇒ 운양삼거리에서 통진/양촌/대곶 방향 ⇒ 이후 양촌/대곶/초지대교 이정표 참고 ⇒ 초지대교 건넌 후 직진(전등사 남문)

♣️ 강변북로(자유로)
가양대교 건너서 올림픽대로 이용 ⇒ 위 올림픽대로 참고

 

◻️ 대중교통 이용 시

♣️ 신촌 ~ 전등사
신촌역 4번 출구 직진 후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 M6117 버스 또는 영등포에서 출발하는 60-3,8000번 버스 승차 후 → 김포복합환승센터에서 하차 → 60-2, 60-5, 70, 700-1번으로 환승 → 전등사 동문 또는 온수리 하차

♣️ 홍대입구역 ~ 전등사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강화운수 2000번 승차 -> 전등사 동문 하차

♣️ 검단,검암역 ~ 전등사
검단사거리역에서 700-1번 또는 검암역에서 700-2번(1번 출구 정면 길건너 정류장), 70번(2번 출구 길건너 고가 위 정류장) 승차 -> 전등사 동문 또는 남문 하차

♣️ 김포공항 ~ 전등사
김포공항 내 국내선 1층 10번 승차장에서 60-5번 승차 -> 전등사 동문 하차 (하루 8회 운행)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전등사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진 않지만 아름드리 나무들이 선물해주는 피톤치드를 흠뻑 마실 수 있어서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강화 여행의 첫번 째 코스로 추천하고 싶다. 먼저 간단한 등산과 함께 시작하여 조양방직이나 자연사 박물관, 고인돌 유적지 등을 둘러보고 동막해변과 같은 바닷가를 둘러보시기 바란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인근 석모도나 장화리에서 일몰을 감상하면 더욱 좋다.

중창기문(重創記文)에 의하면 전등사 381년(소수림왕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절로, 1266년(원종 7)에 중창된 이래 3, 4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현존하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확실하게 단정짓기는 어렵다.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으나 1282년(충렬왕 8)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印奇)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玉燈)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1605(선조 38), 1614년(광해군 6)에 일어난 2차례의 화재로 절의 건물들은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 4월부터 지경(志敬)이 중심이 되어 재건하기 시작해 7년 만인 1621년 2월에 완성되었다. 1678년(숙종 4)에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가 건립되면서 왕조실록을 지키는 사찰로 왕실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되었다. 이 사고장본(史庫藏本)은 1909년 서울로 옮겨져 조선총독부 분실(分室)에 보관되었다가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07년에는 유수(留守) 황흠(黃欽)이 사각을 고쳐 짓고, 별관을 또 지어 취향당(翠香堂)이라 하고 보사권봉소(譜史權奉所)로 정했다. 그뒤에도 1749, 1839, 1855, 1871, 1876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래까지 대규모의 중수 불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대조루(對潮樓)를 비롯해 양곡을 보관하는 정족창(鼎足倉)·석량고(石糧庫) 등의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현재와 같은 대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1912년 일제강점기 때 강화·개성 등 6개군에 있는 34개 사찰을 관리하는 조선불교 30본산의 하나로 승격되었다.

 

또한 이 절의 뒤편에 있는 정족산의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하여 신성시되는 점이 주목된다. 경내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원건축인 대웅전(보물 제178호)·약사전(보물 제179호)을 비롯해 명부전·삼성각·향로각·적묵당·강설당·범종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전등사의 말사인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된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경판은 6·25전쟁 때 파주에 있었던 모부대에서 1매를 가져가 현재 104매만 남아 있다. 그밖에 거대한 청동수조(靑銅水槽)와 대웅전에서 사용했던 작은 옥등 등이 있다.

출처 : 다음 백과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었다.

내부에 있는 유물로는 석가여래 삼존과 1880년에 그린 후불탱화, 1544년 정수사에서 개판한<법화경>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형식의 목조 건물이다.  곡선이 심한 지붕과 화려한 장식(나부상, 동물 조각, 연꽃 조각 등)이 특징적이다.

전등사 대웅보전 처마의 네 모서리에는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발가벗은 나부상이 있다. 대웅보전을 건축하던 도편수와 정을 맺은 뒤  재물을 가지고 달아난 여인을 묘사하였다고 한다. 사랑에 배신당하고 가산을 잃은 건축가의 비애가 속죄하는 여인을 형상화한 조각으로 남겨져 전한다. 행실이 바르진 못하였으나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굴욕을 당하고 있는 여인의 운명이 안쓰럽기도 하다..

푸른 하늘 아래 부채처럼 펼쳐진 우리의 건축물은 아름답고도 경이롭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아름다움이다.

조선 광해군 15년(1623)에 수연(守衍)이 참여하여 1623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원만한 상호와 양감, 균형감, 조각 솜씨가 뛰어난 목조불상이다. 삼존불은 삼세불(三世佛)이라고도 하며,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세 분의 부처님을 말하는데 현세불인 석가여래, 약사여래 , 아미타여래를 모시기도 하고 과거, 현재, 미래불을 함께 모셔 삼존불이라고도 한다.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경내의 모습이다.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관음전과 약사전의 모습이다. 

관음전에 모신 관세음보살상은 경남 산청 겁외사의 성철 큰스님 존상 등 사실적 형상으로 이름난 강대철 조각가가 만들었고, 후불탱화는 해남 미황사 괘불 현상모사와 부산 범어사 대웅전 단청,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감로도 등을 제작한 이수예 화가가 그렸다. 

관음전의 현판은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성파 스님의 글씨다.

보물 제179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대웅보전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의 건물이다. 조선 중기 다포계열의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설치하였으며, 정면 각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배열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기둥과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공포)를 설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다. 대웅보전과 함께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 말고는 다른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건물의 겉모습이나 내부 장식도 대웅보전과 비슷하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석조로 조성한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최근 금박으로 개금되어 있다.

약사전 좌측으로는 명부전이 있다.

전등사동종(중국 북송), 보물 제393호, 높이 164cm, 입지름 100cm,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범종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종과는 그 형태가 판이하다. 이 종은 1097년 중국 하남성 숭명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음통이 없으며 겉에 상ㆍ중ㆍ하로 구획이 지어져 띠가 둘려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 표면에 8개의 네모진 구획이 마련되어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많이 마멸되어 판독하기가 어렵다.

이 종은 기하학적 무늬로 장중하고 소박한 중국 종의 솜씨를 보이며 종소리가 맑고 아름다운 게 특징이다. 이 종은 일제 말기 군수 물자 수집에 광분한 일제가 공출이란 명목으로 빼앗아 가는 바람에 한때 전등사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광복 이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되어 다시 전등사로 옮겨왔다. 

전등사에선 각종 행사와 축제 그리 기도 및 법회가 수시로 열리며 템플스테이나 여러 자원봉사 등을 통해 사찰의 생활을 좀 더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다. 전등사 길목에 소담하게 자리잡은 죽림다원에서 전통차를 마시며 운치를 즐길 수도 있다.

전등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출출하다면 등산로에 위치한 토속음식점에서 산채비빔밥을 드시는 것도 좋다.

과하지 않아 담백하고 맛있다. 

도토리묵 무침은 서비스 받았다^^

강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순무'이다.^^  허기를 해결했다면 이제 조양방직, 자연사 박물관, 고인돌 유적, 동막해변, 마니산, 장화리, 석모도 등 다음 여행 코스로 이동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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